[주일설교, 2021.01.24, 김진영 담임목사] 사울왕의 행동과 그의 믿음
1. 기본 정보
| 항목 | 내용 |
|---|---|
| 일자 | 2021년 1월 24일 (주일) |
| 설교자 | 김진영 담임목사 (서울중앙교회) |
| 설교 제목 | 사울왕의 행동과 그의 믿음 |
| 성경 본문 | 사무엘상 14장 16-30절 |
| 함께 읽은 말씀 | 설교 중 인용: 사무엘상 14:23, 14:24, 14:29 |
| 영상 | https://youtu.be/i-Blv7FFnpc (설교 약 27분 + 기도) |
작성 근거: 유튜브 영상의 한국어 자동 자막 전체를 읽고 정리했습니다. 자동 자막은 고유명사와 성경 용어를 자주 틀리게 받아 적으므로(예: "4호 랑·4 호랑이"→사울 왕, "연 하단·여 나단"→요나단, "앱 옷"→에봇, "타령"→탈영, "밍 마스에서 아예 언론"→믹마스에서 아얄론) 성경 본문과 문맥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이 설교는 지난주에 살펴본 요나단의 믿음과 순종(같은 전쟁, 사무엘상 14장 앞부분)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영상은 설교 첫머리부터 시작하며, 본문을 낭독하는 장면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2. 한눈에 보는 설교의 흐름
| 순서 | 내용 |
|---|---|
| ① 대비 | 똑같은 전쟁에서 성경은 요나단의 행동과 사울 왕의 행동을 대비한다. |
| ② 요나단을 통해 주신 은혜 | 블레셋 온 군대의 혼란, 탈영했던 군인들의 귀환(600명→만 명), 전무후무한 승리의 기회(23절). |
| ③ 사울의 행동 하나 | 제사장을 불러 하나님의 뜻을 묻다가 중지시키고 자기 판단으로 결정한다. |
| ④ 사울의 행동 둘 |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할 때까지" 먹지 말라는 맹세를 시킨다(24절). 본심이 드러난다. |
| ⑤ 무리한 명령 | 금식하며 믹마스에서 아얄론까지 약 35킬로미터를 싸우게 했다. |
| ⑥ 요나단의 평가 | "내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29절). 아간에게 쓰인 말과 같은 말이다. 주기로 하신 복을 막았다는 뜻이다. |
| ⑦ 두 사람 |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계신 사람과,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할 자리에서 은혜를 가로막는 사람. |
| ⑧ 사울과 다윗 | 죄는 다윗이 더 심각했으나 다윗은 회개했다. 사울에게는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가 보이지 않는다. |
| ⑨ 뒷부분 | 응답이 없자 범인을 찾고, 요나단이 걸리자 또 맹세하며 죽이겠다고 한다. |
| ⑩ 사사들과 사울 | 기드온·입다·삼손도 실수했으나 회개할 때 건지셨다. 사울은 거듭 주신 기회마다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지 않았다. |
| ⑪ 적용 | 올해 표어 '합당한 예배'. 온라인 예배라는 시험. 가장과 부모의 예배 자세가 가정을 복되게도, 괴롭게도 한다. |
| ⑫ 결론 | 하나님은 충성된 한 사람을 통해 가정과 교회에 은혜 베푸시기를 기뻐하신다. 요나단도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이었다. |
3. 결론 — 하나님은 충성된 한 사람을 통해 은혜를 베푸신다
- 오늘 말씀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충성된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 교회에 한 사람의 충성된 장로가 있다. 한 사람의 충성된, 기도하는 권사가 있다. 한 사람의 충성된 집사가 있다. 그 한 사람의 충성된 직분자의 믿음과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축복하실 뿐 아니라 주님의 교회, 우리 교회를 축복하시기를 기뻐하신다.
- "저는 별 볼 일 없습니다. 저는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요나단이 그런 사람이다. 그렇게 내세울 만한 사람이 아니다.
-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을 보라. 그 사람들이 뛰어난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이 믿었던 하나님이 뛰어나신 분이다.
- 한 주간을 살아갈 때 이렇게 구하자. "하나님, 제가 예배를 드리거나 직장에 있거나 어디에 있거나 제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생각을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말을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살아가는 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으로 써 주십시오. 그런 직분자로 사용하여 주십시오."
- 주일 예배가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어디서 예배를 드리든지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가 되게 해 주시기를, 예배의 장소를 빨리 열어 주셔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되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구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4. 함께 드린 기도 제목
-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 —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는 마음을 주십시오.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든, 열려 있는 이 기회에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을 주십시오."
- 요나단과 같은 사람 — "하나님, 요나단과 같은 사람으로 살게 해 주십시오. 내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는,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는 남은 삶이 되도록 복을 주십시오."
마무리 기도: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온전한 믿음과 순종을 통해 큰 은혜를 베푸실 뿐 아니라, 한 사람의 불신앙과 자기 욕심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가로막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리는 기도.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의 통로로 살아가는 복을 주시기를,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로 살아가는 은혜를 매 주일 예배 시간을 통해 넘치도록 부어 주시기를, 이번 한 주간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께 합당한 예배를 드리며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
(기도 제목을 주신 뒤 회중이 함께 소리 내어 기도한 약 2분 구간은 자막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정리하지 않았다.)
5. 성경 본문 (사무엘상 14:16-30) 줄거리
본문은 개역개정 성경의 내용을 풀어서 요약한 것입니다. 설교에서 직접 인용하신 23절·24절·29절은 굵게 표시했습니다. 정확한 문장은 성경을 직접 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구절 | 내용 |
|---|---|
| 14:16 | 베냐민 기브아에 있던 사울의 파수꾼이 바라보니, 수많은 블레셋 사람이 무너져 이리저리 흩어지고 있었다. |
| 14:17 | 사울이 함께한 백성에게 "우리 가운데 누가 나갔는지 점호해 보라"고 했다. 점호해 보니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자가 없었다. |
| 14:18 | 사울이 제사장 아히야에게 "하나님의 궤를 이리로 가져오라"고 했다. |
| 14:19 | 사울이 제사장에게 말하는 동안 블레셋 진영의 소동이 점점 더해졌다. 사울이 제사장에게 "네 손을 거두라"고 했다. |
| 14:20 | 사울과 함께한 모든 백성이 모여 싸움터에 가 보니, 블레셋 사람들이 저마다 칼로 자기 동무를 치고 있어 크게 혼란했다. |
| 14:21 | 전에 블레셋 사람들 편에 붙어 그 진영에 들어가 있던 히브리 사람들도 돌이켜 사울과 요나단 편의 이스라엘 사람들과 합했다. |
| 14:22 | 에브라임 산지에 숨어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블레셋이 도망한다는 말을 듣고 싸우러 나와 추격했다. |
| 14:23 | 여호와께서 그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고, 전쟁은 벧아웬을 지나 이어졌다. |
| 14:24 | 그날 이스라엘 백성이 피곤했다.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를 시켜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백성이 아무 음식도 맛보지 못했다. |
| 14:25-26 | 백성이 수풀에 들어가니 땅에 꿀이 있었다. 꿀이 흐르는 것을 보고도 맹세가 두려워 손을 입에 대는 사람이 없었다. |
| 14:27 | 요나단은 아버지가 백성에게 맹세시킬 때 듣지 못했으므로, 손에 든 지팡이 끝으로 벌집의 꿀을 찍어 입에 댔다. 그러자 눈이 밝아졌다. |
| 14:28 |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이 "당신의 아버지께서 오늘 음식을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엄히 맹세시키셨습니다"라고 알려 주었다. 그래서 백성이 피곤했던 것이다. |
| 14:29 | 요나단이 말했다. "내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 보라, 내가 이 꿀을 조금 맛보고도 눈이 이렇게 밝아졌다. |
| 14:30 | 하물며 백성이 오늘 대적에게서 빼앗은 것을 마음껏 먹었더라면 블레셋 사람을 훨씬 더 많이 쳐부수지 않았겠느냐. |
6. 설교 내용 정리
6-1. 도입 — 똑같은 전쟁, 두 사람
똑같은 전쟁의 상황에서 요나단이 어떤 일을 했는지는 지난주에 살펴보았다. 성경은 그 요나단의 행동과 오늘 사울 왕의 행동을 대비하고 있다.
-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전쟁 속에서 요나단은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순종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큰 은혜, 큰 성공을 주셨다.
- 성경은 요나단의 믿음과 순종을 통해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설명한다.
-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이 기적적인 승리의 상황 속에서 사울 왕이 한 행동과 그 행동의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그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가정에, 교회에, 나라에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6-2. 하나님이 요나단을 통해 주신 세 가지 은혜
① 블레셋 온 군대에 큰 혼란을 일으키셨다
- 전혀 요동할 것 같지 않던 블레셋 온 군대에 하나님께서 큰 혼란을 일으키셨다. 요나단으로 인한 혼돈뿐 아니라 땅의 떨림과 두려움이 블레셋 군대에 임했다.
-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다 탈영하고 도망갔다. 블레셋 군인들은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두려움 가운데 블레셋 군대는 자기 편을 적군으로 오해하고 자기 편을 스스로 죽이는 큰 혼란에 빠졌다.
② 탈영했던 군인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 모였던 군인들이 싸울 마음이 없어 다 도망하고 탈영했다. 땅속으로, 굴속으로, 심지어 요단강을 건너서까지 달아났다.
-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요나단을 보시고 은혜를 주시자, 탈영했던 군인들이 스스로 용기를 얻어 다 모여들었다.
-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것이 특별한 은혜임을 쉽게 알 수 있다. 600명밖에 남지 않았던 군인들이 갑자기 몰려들어 만 명이 되었다. 누가 조직적으로 모으지 않았는데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용기와 감동으로 다 모인 것이다.
③ 전무후무한 승리를 거둘 기회를 주셨다
-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무후무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께서 주셨다.
- 23절은 "여호와께서 그날에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고 말한다.
- 얼마나 큰 구원인가 하면, 사무엘이 에벤에셀의 도움으로 얻었던 그때의 승리보다 더 큰 승리를 확실하게 거둘 수 있는 계기를 주신 것이다.
이렇게 큰 은혜를 받는 와중에 사울 왕이 한 행동과 조치들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굉장히 실망스럽다. 목사님은 말씀을 곰곰이 묵상하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요나단의 행동이 어떠했고 사울 왕의 행동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6-3. 사울의 행동 ① — 하나님의 뜻을 묻다가 그만두었다
블레셋 진영에 혼란이 벌어졌다. 사울 왕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제사장을 통해 "지금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한 것이다.
- 본문에는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라"고 되어 있는데, 목사님은 에봇을 가져오라고 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설명하셨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할 수 있는 에봇을 가진 제사장이 옆에 있었다.
- 그래서 제사장을 불러 우림과 둠밈으로 "지금 이 상황에서 전쟁에 나갈까요, 말까요"를 물어본 것이다.
- 그런데 물어보려는 사이에 블레셋 군대가 점점 더 큰 혼란에 빠졌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볼 필요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 사울은 제사장에게 묻자고 하다가 중지시킨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볼 필요도 없다. 이것은 너무 확실하니 내가 알아서 판단하겠다."
누가 보아도, 하나님께 여쭈어 보지 않아도 너무 확실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사울은 그런 결정을 내렸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와중에 있었는데도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자기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았다.
6-4. 사울의 행동 ② — 맹세, 그리고 드러난 본심
그다음 행동이 중요하다. 승기를 잡아 블레셋 군대를 칠 때, 사울은 확실한 승리를 거두려고 군인들에게 맹세를 시킨다. 24절에서 사울은 참 중요한 말을 한다.
- "저녁까지(이스라엘은 저녁에 하루가 끝난다), 오늘이 끝날 때까지,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할 때까지 아무도 음식을 먹지 마라. 음식을 먹는 사람이 있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
여기에 사울 왕의 본심이 딱 들어 있다. 사울은 블레셋이 흐트러지는 것을 보면서 "내가 내 원수를 갚을 때가 되었다"고 말한 것이다. 이 원수를 확실하게 이기고 싶은 열망과 열심이 대단히 컸다.
금식 명령은 일리가 없지 않았다
- 이스라엘은 굶주린 상태였다. 굴속이나 땅속에 숨어 있다가 지금 블레셋을 공격하게 되었다.
- 블레셋 진영에는 약탈물이 많았다. 먹을 것도, 귀중품도 많았다.
- 음식을 많이 먹고 귀중품을 약탈하느라 도망하는 블레셋 군대를 끝까지 치는 일을 놓치지 않게 하려고 사울은 먹지 말라고 한 것이다.
- 상식적으로 "음식에 너무 정신이 팔려 잔치하거나 너무 배불리 먹지는 말라"고 명령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울의 열심은 지나쳤다
- 사울은 자기의 원수를 갚고 싶은 마음이 굉장히 컸다. 그래서 전쟁 중인 군인들에게 금식을 명령했다.
- 요나단은 배고픈 가운데 싸우러 가다가 꿀을 잠깐 찍어 먹고 힘을 얻어 추격했다. 꿀을 많이 먹은 것도 아닐 텐데, 사울의 명령은 그것까지도 금한 것이다.
- 사울은 자기의 군사적 승리를 위한 야망과 열심이 굉장히 커서 백성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다. 그리고 그 명령을 지키지 않을 때 하나님의 저주를 동원했다.
- 하나님께서 금식하며 싸우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에봇을 통해 물어보지도 않았다. 자기의 생각이고 자기의 판단이다.
- "내 원수를 갚음으로써 이름을 떨치겠다"는 욕심과 열망이 사울에게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무리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끌어다가 맹세하게 만들었다.
금식하면서 35킬로미터
- 그날 싸움은 믹마스에서 아얄론까지 이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약 20마일, 35킬로미터쯤 된다.
- 걸어 다녀도 35킬로미터는 힘들다. 뛰어다니면 더 힘들다. 전쟁의 긴장 속에서 금식을 하면서 35킬로미터를 뛰어다니며 싸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왜 이런 무리한 결정을 내렸을까. 하나님의 뜻을 구하다가 중단해 버리고 스스로 판단했다. 그런데 자기 판단으로 내린 그 결정도 하나님의 뜻,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이루는 판단이 아니었다. "내 원수를 내가 다 갚을 때까지"라는 자기의 목적과 뜻을 이루기 위한 무리한 명령이었다.
6-5. 요나단의 평가 — "내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
아버지 사울의 명령을 듣고 요나단은 29절에서 사울 왕의 행동을 정확하게 말한다. "내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 아버지께서 곤란하게 하셨구나, 괴롭게 하셨구나 하는 말이다.
'곤란하게 하다'는 아간에게 쓰인 말이다
- "곤란하게 했다, 괴롭게 했다"는 말은 히브리 말로 '아카르' 이며, 아간과 관계되는 말이다.
- 아간이 범죄했을 때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간아, 네가 오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였구나. 너의 그 죄로 말미암아 우리를 곤란하게 하였구나."
- 요나단이 똑같은 말을 한다. "오늘 아버지 사울이 한 행동이 우리 이스라엘을 괴롭게 했습니다. 우리를 곤란하게 했습니다."
곤란하게 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 목사님은 이것을 꼭 기억하라고 하셨다.
- 하나님께서 지금 주기로 예비하신 축복이 있다. 그 축복을 놓치게 하고, 받지 못하도록 막아 버렸다는 것이 '곤란하게 했다'는 말이다.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약속과 축복이 있었다. 가나안에 들어가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은혜로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전쟁의 승리를, 대가와 희생을 치르지 않고 얻게 될 그 약속의 축복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 아간이 범죄하여 이스라엘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부어 주기로 약속하신 축복이 멈추었다. 약속하신 축복을 온전히 받아 누리지 못하고 놓치게 되었다.
요나단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늘 아버지의 이 잘못되고 성급한 맹세와 아버지의 욕심에서 나온 판단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기로 하신 약속과 축복이 곤란하게 되었고, 막히게 되었고, 방해를 받게 되었고, 놓치게 되었구나. 아버지께서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실 그 큰 승리를 중간에서 방해하시고 막고 계시는구나."
사울이 이 결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받았을 은혜
- 오늘 이 전쟁에서 확실하게 이겨서, 도무지 다시 전쟁할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을 주었다면, 사울이 죽을 때까지 블레셋은 다시 전쟁에 일어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 하나님께서 그 은혜를 한 사람의 믿음과 순종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이다.
6-6.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할 사람이 은혜를 가로막다
모든 사람이 알았다. "하나님께서 오늘 큰 승리를 주기로 작정하셨구나. 믿음으로 움직인 요나단을 축복의 통로로 삼아 그 은혜와 복을 부어 주시기로 하셨구나." 모든 사람이 그것을 경험하며 그 길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또 등장한다.
- 이 사람의 마음 중심에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거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마음보다, 이 기회를 이용하여 나의 원수를 갚고 나의 명예와 나의 지위를 공고하게 하려는 쪽에 마음이 더 많이 가 있다.
- 그러니 이 사람의 판단과 행동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보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지금 부어 주시는 은혜를 가로막고, 그 은혜를 놓치게 하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요나단은 그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하고 있다. "내 아버지께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오늘의 이 큰 은혜와 축복을 곤란하게 하시고, 그 은혜를 잃어버리게 하고 계시는구나. 왕으로서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하는데, 은혜의 통로가 되지 못하고 은혜를 가로막는 사람이 되고 계시는구나."
성경이 보여 주는 두 사람
성경은 똑같은 자리, 똑같은 전쟁터에서 두 사람을 보여 준다.
| 요나단 | 사울 | |
|---|---|---|
| 마음의 중심 | 하나님이 계신다. | 내 원수, 내 명예, 내 지위가 있다. |
| 생각 | 현실과 상황이 어렵고 불가능해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도 은혜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본다. | 하나님의 뜻을 묻다가 그만두고 자기 판단을 의지한다. |
| 결과 | 작은 순종을 통해 기대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은혜와 복을 받는다. | 주시려던 은혜를 가로막는다. |
하나님은 그런 믿음의 사람의 작은 순종을 통해 은혜와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똑같은 전쟁터에, 한 집안 안에, 한 교회 안에 사울과 같은 사람이 있다.
6-7. 사울의 마음 중심에 하나님이 계셨던 적이 있는가
목사님은 회중에게 권하셨다. 사무엘서를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다시 한번 죽 읽어 보라. "사울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중심에 계셨던 적이 과연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사울의 일생을 죽 읽어 보라.
하나님이 마음의 중심에 계신 사람은 죄가 드러났을 때 회개하고 돌이킨다
- 지은 죄를 따지고 보면 다윗이 사울보다 더 심각한 죄를 지었다. 다윗의 죄는 사울의 죄와 비교가 안 될 정도다. 간음을 했고, 자기의 충성된 부하를 살인하는 죄를 저질렀다.
-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지적하실 때,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 됨을 진솔하게 말하고 그 죄에서 회개하려고 온 마음을 다한 사람이다.
사울은 좀 특이하다
- 사울의 일생을 자세히 읽어 보라. 사울이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죄를 뉘우치고 회개의 자리에 이른 적이 있는지 살펴보라.
- 사울은 자기가 죄를 범한 사람에게 인간적으로 "정말 잘못했다"고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하고 뉘우친 적은 있다. 그러나 자기 죄를 하나님 앞에서 돌아보고 회개하며 회개의 열매를 맺은 적은 보이지 않는다.
본문 뒷부분에서 드러나는 사울
- 사울이 하나님께 다시 뜻을 구한다. "우리가 지금 다시 추격할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에봇을 통해 답을 하지 않으신다.
- 그때 사울은 다시 묻는다. "누구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는가. 내가 금식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이 명령을 깨뜨린 사람이 있어서 답을 안 주시는 것 같다. 범인을 찾아보자."
- 찾았더니 자기 아들 요나단이 걸렸다.
그러면 보통의 아버지라면, 신앙의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요나단 때문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리한 명령을 했구나. 내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내 소견에 좋은 대로 판단해서 이런 일이 되었구나. 요나단은 내 명령을 듣지도 못하고 그냥 꿀을 찍어 먹었구나. 요나단이 죽을 것이 아니라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의 잘못된 판단과 인간적인 욕심과 사람들 앞에서의 체면 때문에 제가 결정을 잘못 내렸습니다. 차라리 제가 죽겠습니다."
그것이 왕으로서 회개하는 자세, 아버지로서 회개하는 자세일 것이다. 그러나 사울은 어떻게 했는가. 자기의 체면과 권위를 세우려고 하나님을 다시 끌어온다. "요나단아, 내가 하나님 앞에 맹세하는데 너를 반드시 죽일 것이다. 너를 죽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저주하시기를 바란다." 또 맹세를 동원한다.
이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왕으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이 이 사람의 중심에 한 번이라도 계셨는가가 의심스럽다.
6-8. 사사들과 사울 — 회개하는 사람과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 사람
-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 사사 시대의 특징이다. 하나님을 알고 있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 그러나 중심에 하나님을 믿는 참 믿음이 없다.
- 사사들을 자세히 살펴보라. 사울만 그런가. 기드온도 그렇다. 입다도 그렇다. 많은 사사가 사울이 범한 것과 방불한 죄와 실수를 똑같이 범했다.
- 그러나 그렇게 심각하고 큰 죄를 범했더라도, 자기 죄가 드러났을 때 진심으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 하나님은 그를 건져 주신다.
삼손을 보라
마지막 순간에 삼손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구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모든 법을 다 깨뜨렸습니다. 나실인으로서 지켜야 할 모든 서약을 다 깨뜨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의 두 눈을 뽑히게 하시고 블레셋의 노리개가 되게 하셔서 비참하게 죽게 하신 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제가 회개합니다. 저를 도와주십시오."
- 히브리서 11장에 삼손은 믿음의 인물로 들어가 있다. 그렇게 심각한 죄를 범했는데도 삼손도, 입다도, 기드온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믿음의 인물로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 약점이 없는 사람이 없다. 실수는 다 했다. 기드온도 교만한 마음으로 에봇을 만들었다.
-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중심을 보셨다. 그들이 완전해서가 아니라, 죄가 있을 때 회개할 때에 그들을 구원의 자리에 두시고 은혜를 베푸셨다.
사울은 그렇지 않았다
- 사무엘서의 사울을 자세히 보라. 하나님은 사울에게 계속 기회를 주신다. 오늘 또 잘못했는데도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한 번 더 기회를 주신다. "네가 왕이니 아말렉을 치라." 거기에 순종하면 은혜를 더해 주실 것이었다.
- 끝까지 은혜를 주시는데, 그 은혜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울은 자기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셔 들이지 않았다.
- 결국 사울은 은혜의 자리에서 떨어졌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지도자로 쓰임 받을 사람이 지옥의 형벌에 처하는 사람으로, 마귀의 종으로 질질 끌려다니다가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살아 계신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와중에 있어도 "나를 이런 상황에 두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교인 한 사람을 통해, 그 사람의 삶에 은혜를 주시고, 그 한 사람을 통해 그 가정을 축복하시고, 그 한 사람의 충성된 직분자를 통해 주님의 교회에 은혜 베푸시기를 정말로 기뻐하신다.
6-9. 적용 — 올해의 표어 '합당한 예배'와 온라인 예배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합당한 예배를 드리자, 우리 삶의 모든 곳에서 예배를 드리자는 것이다. 올해 우리가 기도하며 생각하고 있는 표어다.
존경하는 한 목사님의 고백
- 목사님이 평소에 존경하는 목사님이 계신데, 그분이 최근 설교에서 본인이 집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린 경험을 말씀하셨다. 그분이 그렇게까지 이야기하실 줄은 기대하지 못했다고 하셨다.
- 한 주가 아니라 이삼 주를 온라인으로 예배드리셨던 것 같다. 첫 주에는 예배를 잘 드렸다. 그런데 둘째 주가 되니 앉아서 예배드리다가 핸드폰이 울리자 자기도 모르게 핸드폰에 신경을 쓰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세가 비뚤어졌다. 그러면서 깨달았다고 한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정말 어렵구나."
- 목사님은 덧붙이셨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그 정도면, 저도 아마 이삼 주, 한 달간 계속 집에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 쉽게 무너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험을 우리에게 주셨다
- 하나님께서 지금 그 시험, 그 싸움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 나는 하나님을 정말로 예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를 돌아보게 하시고, 나를 테스트하신다.
- "현장에 나오든지 집에서 예배를 드리든지, 네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는 마음이 정말로 있느냐." 하나님께서 나의 신앙을 돌아보게 하신다.
가정에서 예배드릴 때 — 가장과 부모에게
- 가장인 남편, 부모인 여러분이 어떤 마음과 자세와 복장과 태도로 예배드리는지를 자녀들과 가족이 다 보고 있다.
- "아버지도 잠옷 바람으로 예배드리는데 뭐." (그런 분은 없으실 것이라고 하셨다.) "아버지도 예배드릴 때 핸드폰 울리면 다 쳐다보던데 뭐."
-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한 사람의 경건한 아버지, 경건한 부모를 통해 은혜를 주신다. 자녀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아버지다. "우리 아버지는 온라인으로 예배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내가 하나님이라도 저렇게 드리는 예배라면 기쁘게 받으시겠다 싶을 만한 예배를 평생 드리며 사셨다." 그렇게 살아가는 믿음의 한 사람, 한 가장을 통해 하나님은 그 가정에 은혜와 복을 반드시 부어 주신다.
- 그런데 아버지가, 부모가 흐트러져 있다. 자녀들에게는 "예배 똑바로 드려라, 복장도 깨끗하게, 자세도 바르게 해라" 하면서 자신은 흐트러져 있다. 자녀들이 그 모습을 다 보고 안다. 그것이 가정을 괴롭게 하는 것이고, 자녀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고, 나의 신앙을 괴롭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심
-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피셔서, 내가 행한 대로, 나의 믿음대로 은혜로 갚아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 하나님의 본심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이고, 환난을 통해서도 더 큰 은혜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 현장에 나와 예배드리든 어쩔 수 없이 가정에서 예배드리든 올해의 표어를 생각하라. 내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하나님께서 정말로 기뻐하실 만한 예배를 드리며 살아가는 사람인지 돌아보라.
- 그리고 그 은혜의 자리에 갈 수 있도록 이렇게 구하라. "하나님, 예배를 빨리 열어 주십시오.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 너무 오래 끌지 마시고 주님의 교회를 불쌍히 여기셔서, 어려움을 통해서 축복하시든지 기적을 베풀어 주시든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은혜를 주십시오."
7. 참고자료
설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설교에서 직접 말씀하신 내용이 아닌 부분은 성경 본문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경 연구 자료에 근거했습니다. 연대는 학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 "약"으로 표기했습니다.
7-1. 역사 배경
믹마스 전투의 흐름 (사울 통치 초기, 주전 약 11세기 후반)
| 순서 | 사건 | 성경 |
|---|---|---|
| 발단 | 요나단이 게바의 블레셋 수비대를 치자, 블레셋이 병거와 마병과 해변의 모래같이 많은 백성을 이끌고 믹마스에 진을 쳤다. | 삼상 13:3-5 |
| 이스라엘의 형편 | 백성이 굴과 수풀과 바위틈과 웅덩이에 숨고, 일부는 요단강을 건너 달아났다. 사울 곁에 남은 사람은 약 600명이었다. | 삼상 13:6-7, 15 |
| 사울의 첫 잘못 |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직접 번제를 드렸다.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다. | 삼상 13:8-14 |
| 무기 부족 | 블레셋이 철공을 두지 못하게 해서, 싸우는 날 칼과 창은 사울과 요나단에게만 있었다. | 삼상 13:19-22 |
| 요나단의 믿음 (지난주) |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무기 든 소년과 둘이서 블레셋 초소로 올라가 약 20명을 쳤고, 땅이 진동하며 큰 떨림이 일어났다. | 삼상 14:1-15 |
| 오늘 본문 | 블레셋의 혼란, 사울의 중단된 물음, 금식 맹세, 요나단의 꿀. | 삼상 14:16-30 |
| 그날 저녁 | 지친 백성이 짐승을 잡아 피째 먹는 죄를 범했다. | 삼상 14:31-35 |
| 밤 | 사울이 밤에 추격하려 하나님께 물었으나 응답이 없었다. 제비를 뽑으니 요나단이 뽑혔다. 사울은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맹세했으나, 백성이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하며 요나단을 구했다. 추격은 거기서 멈추었다. | 삼상 14:36-46 |
- 설교에서 "오늘 뒷부분을 읽어 보라"고 하신 내용이 14:36-46이다. 결국 금식 맹세 때문에 승리는 중간에 멈추었고, "사울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과 큰 싸움이 있었다"(14:52). 사울 자신도 훗날 블레셋과 싸우다 길보아산에서 죽는다(삼상 31장). 설교의 "확실히 이겼더라면 사울이 죽을 때까지 블레셋이 일어서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말씀과 견주어 볼 대목이다.
- 600명과 만 명: 600명은 본문에 나온다(13:15, 14:2). 다시 모인 사람의 수는 개역개정 본문에 숫자로 적혀 있지 않고 "숨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나왔다고만 한다(14:21-22). 옛 헬라어 번역 구약(70인역)의 14:23에는 사울과 함께한 백성이 약 만 명이었다는 문구가 더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벤에셀의 승리 — 사무엘 때 미스바에서 이스라엘이 회개하며 모였을 때 블레셋이 쳐들어왔으나, 여호와께서 큰 우레로 블레셋을 어지럽게 하셔서 이스라엘이 이겼다. 사무엘이 돌을 세워 '에벤에셀'(도움의 돌)이라 하고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고 했다(삼상 7:5-13).
아간 사건 — 여리고 정복 때 유다 지파의 아간이 하나님께 바쳐야 할 물건을 몰래 가졌다. 그 죄로 이스라엘은 작은 성 아이에서 패하여 36명쯤 죽었다.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고 했고, 그곳 이름이 '아골(괴로움) 골짜기'가 되었다(수 7장, 특히 7:25-26).
사울에게 주어진 또 한 번의 기회, 아말렉 —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아말렉을 쳐서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명하셨다. 사울은 아각 왕과 좋은 짐승을 남겼고,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과 함께 왕위에서 버림받았다(삼상 15장). 그때에도 사울은 사무엘에게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여" 달라고 청했다(15:30).
7-2. 지리
| 지명 | 설명 |
|---|---|
| 기브아 | 베냐민 땅에 있는 사울의 고향이자 본거지. 예루살렘 북쪽 약 5킬로미터로 본다. 사울의 파수꾼이 여기서 블레셋 진영을 바라보았다(14:16). |
| 믹마스 | 예루살렘 북동쪽 약 11킬로미터의 산지 마을. 깊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게바와 마주 본다. 블레셋 진영이 있던 곳. |
| 게바 | 믹마스 맞은편 남쪽의 베냐민 성읍. 요나단이 여기서 골짜기를 건너 올라갔다. |
| 벧아웬 | 믹마스 근처, 벧엘 가까이에 있던 곳. 전쟁이 이곳을 지나 서쪽으로 이어졌다(14:23). |
| 아얄론 | 산지에서 서쪽 평야(블레셋 쪽)로 내려가는 길목의 골짜기와 성읍. 블레셋이 자기 땅으로 달아나는 방향이다. 믹마스에서 직선으로 약 25~30킬로미터로 보며, 굽은 산길로는 더 멀다. 설교의 "20마일, 35킬로미터"는 이를 어림한 값이다. |
| 에브라임 산지 | 베냐민 북쪽의 산악 지대. 숨어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기서 나왔다(14:22). |
| 블레셋 | 지중해 해안 평야의 다섯 도시(가사, 아스글론, 아스돗, 가드, 에그론)를 중심으로 한 민족. 철기를 다루는 기술과 병거를 가졌다. |
7-3. 인물
| 인물 | 설명 |
|---|---|
| 사울 |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이스라엘의 첫 왕. 백성이 왕을 요구하여 세워졌다(삼상 8-10장). 13장의 번제, 14장의 맹세, 15장의 아말렉 사건에서 거듭 자기 판단을 앞세웠다. |
| 요나단 | 사울의 맏아들. 믿음으로 블레셋 초소를 쳤고, 훗날 다윗과 깊은 우정의 언약을 맺었다(삼상 18:1-4). 아버지와 함께 길보아에서 전사했다. |
| 아히야 | 엘리의 증손, 아히둡의 아들. 실로에서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에봇을 입고 사울 곁에 있었다(14:3). |
| 사무엘 | 마지막 사사이자 선지자.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
| 다윗 | 사울 다음 왕.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 했다(삼하 11장). 나단 선지자가 죄를 지적하자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고 회개했다(삼하 12:13, 시 51편). |
| 사울이 사람에게 뉘우친 장면 | 다윗이 자기를 살려 준 것을 알고 사울이 소리 높여 울며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했고(삼상 24:16-17), 뒤에도 "내가 범죄하였도다"라고 했다(26:21). 그러나 다윗을 쫓는 일을 그치지는 않았다. 설교의 "사람에게 인간적으로 뉘우친 것은 있지만"이 가리키는 장면으로 보인다. |
| 아간 | 유다 지파 사람. 위 7-1 참조. 역대상 2:7은 그를 "이스라엘을 괴롭힌 자 아갈"이라고 부른다. |
| 기드온 | 300명으로 미디안을 이긴 사사. 승리 뒤 전리품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자기 성읍에 두었는데, 그것이 온 이스라엘과 기드온 집에 올무가 되었다(삿 8:24-27). |
| 입다 | 암몬을 이긴 사사. "돌아올 때 내 집 문에서 나와 영접하는 자를 드리겠다"고 성급하게 서원했다가 외동딸이 나왔다(삿 11:30-40). 성급한 맹세라는 점에서 사울과 닮았다. |
| 삼손 | 나실인으로 태어난 사사. 서약을 차례로 깨뜨리고 눈이 뽑혀 블레셋의 조롱거리가 되었으나, 마지막에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하고 부르짖었다(삿 16:28-30). |
7-4. 문화
에봇, 우림과 둠밈
- 에봇은 제사장이 겉에 입는 조끼 모양의 옷이다. 대제사장의 에봇에는 가슴에 '판결 흉패'가 달렸고 그 안에 우림과 둠밈을 넣었다(출 28:6-30).
-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의 뜻을 여쭐 때 쓰던 도구다. 모양과 사용법은 성경에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주로 "갈까요, 말까요" 같은 물음에 답을 얻는 데 쓰였다(민 27:21, 삼상 23:9-12, 30:7-8).
- "하나님의 궤"인가 "에봇"인가(14:18): 당시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에 있었고(삼상 7:1-2), 아히야는 에봇을 입고 있었다(14:3). 또 "네 손을 거두라"(19절)는 말은 궤보다는 우림과 둠밈을 꺼내는 동작에 어울린다. 70인역은 이 구절을 "에봇"으로 적고 있다. 그래서 많은 학자가 설교에서 설명하신 것처럼 에봇으로 본다. 히브리어 본문대로 궤가 잠시 옮겨져 있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어 학자마다 갈린다.
맹세와 저주
고대 이스라엘에서 맹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하는 것이어서, 어기면 하나님의 벌을 받는다고 여겼다. 왕이 군대 전체에 맹세를 시키면 듣지 못한 사람까지 묶이는 것으로 여겨졌다. 사울이 요나단에게 한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14:44)는 당시의 굳은 맹세 형식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고 한다(출 20:7).
"눈이 밝아졌더라"
굶주려 흐려졌던 눈이 꿀을 먹고 기운을 되찾았다는 표현이다(14:27, 29). 지팡이 끝으로 조금 찍어 먹은 것만으로도 힘이 돌아왔다는 것이 요나단의 말에 담긴 요점이다.
하루의 시작과 끝
이스라엘은 해가 질 때 하루가 끝나고 새 날이 시작된다고 보았다(창 1:5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설교에서 "이스라엘은 저녁에 하루가 끝난다"고 하신 배경이다.
2021년 1월의 예배 상황
당시는 코로나19로 예배당 모임이 제한되어 현장 예배와 온라인 예배가 함께 드려지던 때였다. "예배의 장소를 빨리 열어 주십시오"라는 기도는 이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7-5. 신학 용어
| 용어 | 풀이 |
|---|---|
| 아카르 | '괴롭게 하다, 곤란하게 하다, 어지럽히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여호수아 7:25에서 아간에게, 사무엘상 14:29에서 사울에게 쓰였다. 아합 왕이 엘리야를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 부르고 엘리야가 "당신과 당신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다"고 되받을 때에도 이 말이 쓰였다(왕상 18:17-18). '아간'이라는 이름과 소리가 비슷하여 성경이 둘을 이어서 쓴다. |
| 마음의 중심 |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사울 다음 왕을 고르실 때 하신 말씀이다. |
| 은혜의 통로·축복의 통로 | 하나님이 한 사람을 복 주셔서 그 사람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흘러가게 하신다는 뜻의 표현.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2-3) 하신 말씀에 뿌리를 둔다. |
| 회개(悔改) |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 사람 앞에서 후회하는 것과 구별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
| 회개의 열매 | 참된 회개는 말에 그치지 않고 삶의 변화로 나타난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마 3:8). |
|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17:6, 21:25). 사사 시대를 요약하는 말이다. |
| 사사(士師) | 왕이 서기 전, 하나님이 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다스리게 하신 지도자들. |
| 나실인 |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린 사람. 포도나무 소산을 먹지 않고, 머리털을 자르지 않고, 주검을 가까이하지 않는다(민 6:1-8). |
| 히브리서 11장 | '믿음장'이라 불린다. 32절에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이 믿음의 사람으로 나온다. |
| 합당한 예배 |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
| 직분자(職分者) | 교회에서 직분을 맡은 사람. 장로, 집사, 권사 등. |
| 표어(標語) | 교회가 한 해 동안 함께 붙들고 기도하는 주제 문구. |
8. 정리하며 확인할 점
- 영상 자동 자막의 인식 오류로 일부 표현과 고유명사는 성경 본문과 문맥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설교자의 표현과 미세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2021년 영상이라 자막 품질이 낮아, 뜻이 통하는 범위만 정리했습니다.
- 뜻이 분명하지 않아 조심스럽게 옮긴 곳: ① 블레셋 군대에 임한 것을 자막은 "지 신과 두려움"으로 적었는데, 본문 14:15의 "땅도 진동하였으니… 큰 떨림"에 맞추어 "땅의 떨림과 두려움"으로 적었습니다. ② 요나단의 꿀에 대한 한 문장("꿀을 많이 먹은 것도 아닐 텐데 그것까지도 금했다")과 존경하는 목사님의 온라인 예배 첫 주 모습은 자막이 깨져 있어 뜻이 통하는 만큼만 적었습니다. ③ 올해 표어는 설교에서 풀어 말씀하신 대로 적었으며, 교회가 정한 정확한 표어 문구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온라인 예배 경험을 나누신 "존경하는 목사님"의 이름은 설교에서 밝히지 않으셨습니다.
- 숫자: "600명이 만 명이 되었다"와 "믹마스에서 아얄론까지 20마일, 35킬로미터"는 설교에서 말씀하신 그대로 적었습니다. 만 명이라는 숫자는 개역개정 본문에는 없고, 거리도 재는 길에 따라 달라지는 어림값입니다(7-1, 7-2 참조).
- 사울의 마지막에 대해 6-8에는 목사님이 말씀하신 표현 그대로 적었습니다. 성경은 사울이 길보아에서 죽은 일과 그 까닭("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대상 10:13-14)을 기록하며,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 기도 제목 뒤 회중이 함께 기도한 약 2분 구간은 자막이 잡히지 않아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 2~4장과 6장(설교 흐름·결론·기도 제목·설교 내용 정리)은 설교에서 실제로 말씀하신 내용만 담았고, 7장 '참고자료'는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 참고자료의 연대, 지명의 정확한 위치와 거리, 14:18의 "궤/에봇" 문제 등은 학자에 따라 견해가 조금씩 다릅니다.